희망을 가지세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김도요 / 2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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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한국인 다 되었네요."
"희망을 가지세요."
전자는 이주민을 향한, 후자는 장애인을 향한 모욕적인 표현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었다. 당혹스러웠다. 이 두 가지 표현은 얼핏 칭찬이나 격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칭찬과 격려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말을 한 당사자에게 이런 표현이 듣는 사람에게는 모욕적일 수도 있다고 알려준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한다면 더 이상 문제가 아닌걸까? 모욕을 한 사람은 없고 모욕을 당한 사람만 있으니, 모욕을 당한 쪽에서 감내하거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
단순히 몇몇 말들을 하지 않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왜 이런 말이 모욕이 되는지 이해하지 않으면 표현만 다른 비슷한 말을 하거나, 말이 아니라도 시선과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말이 왜 모욕이 되는지 알아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이런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중략)
장애인에게 하는 '희망을 가지라'는 말 역시 전제 때문에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희망을 가지라는 건 현재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의 삶에는 당연히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모욕적이라고 했다. 설령 장애인이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이상하다. 장애인이 희망을 가져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변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평범해 보이는 특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중략) 간단히 말하면 상대를 배려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당신을 잘 대해준다면 그건 나의 호의일 뿐 당신의 권리는 아니라고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무례함을 정당화시킨다.
일상에서 이 말은 요구가 부적절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중략)
장애인을 위해 국가가 예산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별 감정이 없다가, 막상 장애인이 당연한 권리로서 국가 예산을 요구하면 기분이 상한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리라고 요구하며 시위를 했더니, 지나가는 사람이 "나라에 고마워하며 살아야 해요"라고 충고한다.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베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며 시위 방식을 문제삼는다. 나는 호의를 베풀 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그것을 요구할 원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호의와 권리에 대한 이 이른바 ‘명언’은 불편등한 권력관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은 호의로서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호의성(시혜성) 자선사업이나 정책은 그저 선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이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서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_ 제목에 깜짝 놀라진 않으셨는지요? ㅎㅎㅎ 책을 읽다가 공유하고 싶어 가져와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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