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주신 난쟁이 아저씨>
페이지 정보

본문
<꿈을 주신 난쟁이 아저씨>
...
말 설고 물 설은 머나먼 이국, 미국 이민 생활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과
그 속에서 얻어진 체험들을 고국 땅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계기의 글이 되었으면 하고
영어(발음)에 대한 자료를 연재하고 있다.
영어가 되면 세상이 넓어지고 멀리 보인다.
8순 노인네의 고국 떠난 40 년의 인고의 결실이다.
...
난 2차 대전 와중에 일본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의 손에 잡혀
나의 조국인 대한민국(경남 울주 XX면)에 왔었다고 선친은 말씀 하셨다.
==
선친은 유기(놋 그릇)공장을 하셨다.
그렇게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살았다고 알고 있다.
...
초등학교(중남초교)에 들어가 3학년이 되던 해 선친은 부산으로 이사를 가려고
헌 집을 하나 사서 그 목재를 뜯어다 부산에 새 집을 지으려고
인부들과 같이 일을 하시다가 불행히도 지붕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졌다.
...
그 후 몇 년을 고생을 하셨고 그 수발을 어머니가 동네의 아이들 똥이 몸에 좋다고
해서 그걸 온 동네에 부탁을 해서 구해다 끓여 증발시켜 나오는 액을 드시게 했다.
...
당시는 난방과 취사는 산에서 나무를 해 와 그걸로 땔감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당시 나의 집엔 산에 갈 사람이 없어 내가( 9살) 나무를 하러 다녔다.
...
그런데 나는 어리기도 하지만 키가 작아 어른 지게를 질 수가 없어
지게발목을 조금 잘라 내어 짧게 해서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곤 했었다.
...
이렇게 살자니 그간 조금 있던 재산은 계속 축이 나서 겨울엔 아침에는
그래도 밥을 먹고 점심은 건너뛰고 저녁은 시라기 죽으로 연명하였었다.
...
이 땐 죽이라도 양껏 먹었으면 하는 게 동생과 나의 꿈이었다.
그런데 이건 우리 집만은 아니고 동네 거의가 이랬다.
...
이러니 날이 세면 어머닌 쌀독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고 난 마당에 있는
어제 해 온 나무가 얼마나 남았는지 보고는 걱정을 하는 형편이었다.
나무가 적어 불을 덜 때는 날이면 새벽이 되면 추워서 잠을 자질 못 했었다.
...
내가 그러니 아버진 얼마나 추우실까 싶어 얼른 나무를 해 와야지 하곤
아침을 마치면 산으로 올라갔다. 갔다 오는 데 보통 4-5시간이 걸렸다.
...
그런 와중에 하루는 나를 포함한 동네 애들이 춥다고 햇빛이 잘 쬐는
처마 밑에 모여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그 때 이웃에 사시던
난쟁이 아저씨(유교 학자)가 우릴 보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
...
“ 지금 춥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겨울을 보내면
내년 겨울은 더 배가 고프고 더 추워진다.
공부를 하면 추위도 이겨내고 배고픔도 이겨내는 길을 너희들이 찾을 수 있다. ”
...
내가 가르쳐 줄 터이니 한문을 배워라 하셔서 그날부터
동네 애들 다섯이 그 집에 가서 천자문을 앞에 놓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배운 한문이 다음 겨울까지 두 겨울을 배웠는데
난 천자문과 동몽선습 일부까지 배우게 되었다.
이 와중에 6.25 사변이 나서 나라가 온통 뒤집혔었는데 그 때도 우린 공부를 했었다.
...
지금도 잊지 못할 것은 그 당시는 모두가 어려웠지만 땔감이 없으면
취사도 난방도 안 되니 이 집엔 키들이 작아서 아들이 둘이 있어도
지게를 지지 못해 나무를 해오지 못하니 방이 늘 냉방이었다.
...
또한 먹을 것이 부족하니 소나무 껍질(안에 것)을 벗겨다 물에 넣고
며칠을 두면 불어나는데 여기에 쌀가루를 조금 넣고 죽을 끓여 먹었었다.
이러는 게 이 집은 좀 더 심할 뿐 대게가 그랬다.
...
해서 이 죽을 오래 먹고 나면 얼굴이 붓는데 이를 부황이 걸렸다고 했었다.
이러다 봄이 되어 쑥이 나면 그걸 끓여먹고 그 부황이 없어지고 했다.
...
이 집엔 방이 차니 엉덩이를 대고 앉을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고 앉았었는데
애들은 그렇다 치고 그 분 아저씬 다리가 짧아 그렇게 앉질 못 하시는 걸 보고
마음이 무척 안쓰러웠다.
...
그러다 전쟁이 어느 정도 승기를 잡아 정부가 부산으로 왔다가
다시 서울로 수복하면서 정부 각 부처엔 여러 직종에 사람이 부족 하였었다.
...
이 때 문교부에 사환자리가 생겼다면서 당시 나의 이모의 시가집 식구 한 분이
문교부에 근무 하셨는데 이 분이 나를 추천을 해서 서울로 취직을 하러 가게 되었다.
...
생전 촌놈이 서울에 올라가 그것도 문교부(당시 임시 청사가 명동에 있었음.)에
가니 기가 죽는데 인사과장 말씀이 벌써 다른 사람도 추천을 해서
다섯 명이나 신청이 되었으니 누굴 특별히 뽑을 수도 없고 해서
공개로 시험을 치게 되었으니 다음 주 며칠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첨부파일
-
난쟁이 아저씨.hwp (60.5K)
1회 다운로드
- 이전글<초 간단 기초영어>(034회) 25.06.23
- 다음글< 영어 UpGrading 학습법 ! >(제 06 강) 25.06.20
댓글목록

Mason할배님의 댓글
Mason할배 작성일
원안이 다 올라가지 않는다.
첨부를 열면 원안이 있다. 참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