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백나무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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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
아침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 전 다짐을 한다. 매일 아침...
어느 날은 그 결심이 출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져 다시 결심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스스로가 대견할 만큼 잘 지내기도 한다.
아침마다 하는 결심은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대단한 결심도 아니고 무언가 훌륭한 일을 하고자 하는 단호한 결심도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도 큰 사고 없이 많이 웃으며 지내고자 하는 다짐이다. 그런 내게 시련의 날은 오고야 말았으니...
출근을 해서 많이 웃고 즐겁게 거주인들과 지내며 있던 어느 오후에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서모 거주인이 방에서 실례를 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일들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식사준비를 하는 바로 그 시간에 거사를 치루었던 것이다. 살짝 실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도저히 웃으며 넘어가기에는 눈에 보이는 실례의 흔적들이 방의 벽과 바닥, 출입문과 손잡이, 그리고 그녀의 몸에까지 ...
어찌하랴 다른 거주인들은 식사를 하고 나와 그녀는 사태의 수습에 나섰다. 일단 그녀도 식사는 해야 하니 1순위로 수습을 마쳤고 다른 거주인이 들어오기 전에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소독약과 방향제도 뿌려가며 열심히 닦았는데 가시지 않는 흔적이 있었다. 냄새.
가나헌 방들의 벽은 가슴 높이까지 편백나무로 되어 있어 물을 분사하면 편백나무의 향이 고스란히 풍겨져 나온다. 그날 밤도 가습을 위한 물을 편백나무를 향하여 마구 분사를 하였는데 평소에 알고 있던 그 편백나무의 향이 아니었다. 이건 향이 아닌 냄새로 구분되는 그 무엇이다. 문제의 냄새를 찾기 위하여 눈을 크게 뜨고 벽을 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흔적의 파편은 남아있지 않았다.
냄새로 변해버린 편백나무의 향기가 도저히 편치 않아 물걸레를 들고 나무를 닦기 시작했다. 한참을 진행하던 중 아! 이런 편백나무의 틈사이로 잘도 숨겨놨다. 그녀는 자신의 흔적을 그리도 꼼꼼하게 카멜레온처럼 숨겨 두었던 것이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자고 있는 그녀.
그래도 열심히 닦고 닦아 편백나무의 냄새는 고맙게도 본래의 향기로 돌아왔고 그녀의 꼼꼼한 바르기 실력으로 하루의 마감에 난 다짐을 지키게 되었다. 여전히 가끔씩 향기를 냄새로 바꾸는 실력을 갖춘 그녀가 있어도 편백나무의 향은 지워지질 않으니 후원을 해 주신 후원자님께도 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 어떤 일보다 지금의 일이 즐겁고 소중하다. 남들은 케어를 기본이라고 하며 쉽게 보는 경향도 있는데 컴퓨터가 아닌 서류도 아닌 얼굴을 맞대고 손길을 느끼는 이 일이야 말로 강한 책임감과 능력이 없으면 잘 해내지 못할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평소에는 그저 늘 그 곳에 있는 벽과 같지만 거주인들에게는 편백나무 향기처럼 변하지 않는 신뢰의 향기를 뿜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웃고 내일도 웃을 수 있는 하루하루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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